2008년 02월 27일
시닝 - 타얼쓰. 늙은 라마승의 가르침
11월 24일

아침 6시. 어제 약속한 중국인이 기차를 타려는지 부스럭 거리며 일어난다.

나를 깨우지도 않고 자기 짐을 챙기는것이, 아무래도 어제 한 약속이 조금 부담스럽나보다.

나도 당장은 그사람 말고는 티켓을 사다 줄 사람이 없는 입장이라

일어나서 나갈 채비를 하고 따라 나섰다.

기차역까지 따라가서 미리 챙겨놓은 530위안을 주고, 불안감에 창밖에서 그를 엿보고 있었는데,

잠시후 돌아와서 기차표와 건강검진표 - 고산지대 여행이 가능한가를 물어보는 - 비슷한걸 주고

잔돈 몇위안은 자연스레 챙겨 가버린다.

그래. 티켓사다 주느라 가슴 떨렸을텐데 그정도야.

호텔로 돌아가 안도감에 다시 잠을 청하고

11시경 일어나 인근에 있다는 타얼쓰를 방문하기로 마음을 먹고 길을 나섰다.


어디가 티벳땅인가. 현재 중국 정부는 시장성을 장족 자치구로 구분하여 대외적으로 중국의 지배하에 있는 땅으로 소개하고 있지만

칭하이성과, 쓰촨성 일대, 윈난성 북부지역이 과거 티벳의 영토라고 봐야 맞을것이다.

1557년 겔룩파의 설립자인 총 카파가 태어난 땅에 세워졌다는 타얼쓰

절입구에 있는 스투파

절에서 만난 스님.

사실 나는 치사하게도 입장료를 지불하지 않고 몰래들어왔다.

그래서 관람중 계속해서 불안감에 시달렸으며, 그 불안감을 잊기 위해

늙은 라마승을 발견하고 친한척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중국어나 영어가 아닌, 나는 우리말로, 라마승은 중국어와 티벳어를 섞은 말도되지 않은 우스꽝스런 대화였지만

상관없다. 혹여 라마승이 수유차(야크버터로 만든 차)라도 한잔 대접한다면

절 내부를 들어가 볼 절호의 찬스가 아닐까.

또한 예전에 본 다큐멘터리 '금단의 땅 무스탕' 에서 라마승과 마부와의 선문답이 생각나서

무작정 라마승에게 말을 걸어본 것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에 나오는 마부는 아주 가난하고, 배우지도 못했다.

그는 가끔 손님을 태우고 들리는 여관의 딸을 연모하지만,

가진것 없고 배운것없는 자신의 처지를 잘 알기에, 벙어리 냉가슴 앓듯 말한번 건네지 못하고

매번 숙소에 들려서 아직 시집가지 않은 그녀를 보며 안도의 한숨과

자신의 처지를 비관한 한숨을 술잔을 담아 비우는 처지이다.

어느날 마부는 라마승에게 물어본다

'스님, 번뇌란 어디서 오는것입니까'



내가 물어보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늙은 라마승이 나에게 알아듣지 못하는 티벳어로 뭐라뭐라 말하며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고,

나는 그걸 따라오라는 의미로 받아들였다.

앞서가던 걸음을 멈춘 라마승은 나를 돌아보더니 바닥에 쪼그려 앉았고

늙은 라마승이 나에게 뭔가 가르침을 주려나보다 라고 생각했다. 편한대로 해석하면 되기에 못알아 들어도 상관없었다.

그 앞에 쪼그려 앉아 물어보았다.

'스님, 번뇌란 어디서 오는것입니까'

라마승은 내 앞에 쪼그려 앉아 내 질문을 듣더니 갑자기 끙. 끙. 거리며 뭔가 말문을 열듯했고,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어떤 가르침을 줄지 궁금해 하며 신경을 곤두 세우기 시작했다.

'팅부동' (몬;알아 듣겠다)

라는 대답과 함께, 어디선가 지린 냄새가 나는듯 싶더니

라마승의 옷자락 밑에서 누런 오줌발이 내쪽으로 흘러 내려왔다.

아 이 영감쟁이가-_- 오줌을 쌀꺼면 싼다고 말을 할것이지.

힘빨이 딸려 끙끙거리며 라마승은 보던일을 계속해서 보았고,

나는 내 갈길을 다시 가기 시작했다.



라마승이 쓰고 있는 안경이, 영화 음란서생에서 한석규가 쓰고 나온거랑 비슷하게 생겼는데,

그게 이천만원이라고 했던가? 내 선글라스랑 바꿔가지고 와서 골동품점에 팔았으면 돈좀 되었을려나.


[음란서생에 나오는 싯가 2000만원짜리 안경]






선문답을 준비하는 라마승들.

선문답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포스팅 할 기회가 있을테니 그때로 미루고,


버터로 만든 불상. 타얼쓰가 유명한 이유가 바로 이 야크버터로 만든 불상이다.

버터로 만든 불상을 지키고 있는 스님옆에 앉아 잠시 몸을 좀 녹이다가


신축중인 절 내부로 들어가보니



괴이한 표정의 불상이 있더라.


마지막으로 스님들을 한번 더 도촬하고;

날은 존나게 추운데, 나에겐 여름옷과 가을 자켓뿐이라 벌벌 떨다가

난로앞에 앉아 차를 마시는 젊은 라마승을 보고 무작정 들어가

차와 난로위의 고구마를 빼앗아 먹고;


타얼쓰 관람 종료.

저녁식사로 탕수육을 먹고, 기차탈때 걸려서 혹여 쫒겨나지는 않을까 고민하며 먹을걸 바리바리 싸들고 기차역으로 갔는데,

의외로 쉽게 통과했다.

검사도 안하더라.

라싸행 특급기차는 시원스레 잘도 달린다. 얼마만의 기차여행이던가.
by 꼭사슴 | 2008/02/27 01:19 | TIBET | 트랙백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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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onizgga at 2008/02/27 09:44
스님들의 닭벼슬같은 모자는 무엇인가요???
의식이 있을 때 쓰는건가;;;
Commented by 꼭사슴 at 2008/02/27 14:07
라마교에서는 스님들의 건강을 위해 닭싸움을 권장하는데,

닭싸움할때 쓰는겁니다.;;
Commented by -_- at 2008/02/27 17:18
오 오랫만의 수작; ㅎㅎ
Commented by 꼭사슴 at 2008/02/28 00:48
수작은 여자한테나 걸어야지-_-
Commented by -_- at 2008/02/29 03:35
http://blog.empas.com/rosetop/

형의 포쓰;를 당해낼 분은 이분밖에;
Commented by 꼭사슴 at 2008/02/29 09:32
아, 눈 버렸다. 눈을 씻어내야지.
Commented by 신선해 at 2009/10/27 00:20
왠지 자꾸 웃음이 나는 블로그.....
글공부 몇년한 나에게도 이런 재치가 있더라면
정말 좋았을지 싶네요~^^
Commented by 꼭사슴 at 2009/10/27 00:42
글, 연기, 음악
이런 재주 가진 사람이 미치도록 부럽습니다.
글쟁이 하시는 선배께서는 제가 쓴 글을 보시고 한마디,
아니 여러마디로 제 글을 지적하시더군요.
가장 문제가 되는것이 한문장이 너무 긴 만연체라며,
이딴식;;이면 절대 기고; 할 수 없다고 문장을 짤라냈더니만
아아, 현장감이 떨어져요. 역시 저는 만연체가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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